그 남자 이야기, 4학생회관은 ‘학관’이라는 줄임말과 함께 미로라고 불린다. 일설에 의하면 몇 회인가의 건축과 졸업생이 디자인 했다고 하는데, 그 예술적 기질이 그리 효율적이진 않았던 게 분명하다. 학교가 전체적으로 산에 지어졌으니 도로가 오르막이라, 입구가 반지하 비슷한 계단 아래에 있는 거야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1층에서 계단으로 올라서 조금 돌다 보면 다시 1층이라거나, 2층 복도에서 걷고 있었는데 3층이라거나 하는 일을 몇 번 겪다 보면 학교에 대한 회의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악명 높은 학관의 문구점에서 바닥을 보이는 연습장과 만년필 잉크 같은 것을 이것 저것 사고, 추가로 3M의 인덱스 레이블을 샀다.
- 왜 날 지도교수로 하고 싶다는 건데?
교수는 귀찮아하는 기색으로 나를 보았었다. 대학원 면접 때의 일이다.
- 번역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작품을 우리 나라 말로 옮기는 작업이 매력적….
- 교과서 읽나?
대뜸, 교수가 말문을 막았다.
- 딱히 심각하게 질문한 건 아냐. 그렇게 긴장해서 대답할 거 없어. 장래에 교수가 되고 싶다거나 하면 줄을 잘 설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 그런 뜻으로 한 말이니까.
교수는 그 때부터 그랬다. 항상 직설적이었고, 적어도 학생들에게는 말을 거르거나 우회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성격 때문에 받지 않아도 될 오해를 받고는 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리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 나이에 전임강사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한 두 번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이 아닐 거라고 짐작할 수는 있엇지만.
학관 3층에 있는 ‘조명’의 방은 비어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서 이야기가 길어졌거나, 아니면 중앙 도서관 근처 잔디밭에서 술잔을 나누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근처가 아니라 혹 순대거리까지 내려 갔다면 아직 돌아오기에도 이른 시간이다. 어쩐지 허망해져서 곧장 모노드라마로 갈까 망설여진다.
“저,”
돌연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짧게 자른 고등학생 머리를 한, 아직 새내기로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조명 사람이예요? 이 사람들 점심 먹으러 가서 안 온 거 같은데.”
“……저, 저, 99학번 한 지윤 선배님이시죠?”
당황해서, 에? 하고 어이없는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내가 언제 만난 적 있었던 사람인가. 한 두 번 보았던 조명의 작년 후배들을 떠올려 보았지만 이 고등학생의 얼굴은 기억에 없었다. 교수님 대신 휴강안내를 하러 들어갔을 때 만난 사람일까. 그들이 내 이름이나 학번을 알 리 없다. 대학원 학번도 아닌 학부의 것을.
“응, 그렇기는 한데….”
어미語尾를 흐리고, 다시 얼굴을 살핀다. 여전히 기억에 없는, 짙은 눈썹과 두툼한 콧잔등의, 묵묵하고 강할 것 같은 인상을 언제 보았나.
“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십 오 기 박현규입니다. ‘조명’에서 음향 공부하고 있습니다.”
언뜻 충청도의 억양이 섞여들었다. 가 본 적 없는 지역, 느릿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이 산다는 선입관에 어울리는 인상이었다. 아까 오형기가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무대 아래에서 나를 보았다는 후배가 있다고. 담배 냄새조차 배어 있지 않고, 긴장한 듯 초록색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는 손도 아직 어린 티가 남아 있었다. 이런 후배라니, 나보다 한참 아래인 나이의, 저 순수한 눈빛이라니. 해마다 새내기들 대부분은 해방의 눈빛으로 또는 도전의 눈빛으로 대학 교정으로 들어왔다. 그들 중에는 봄, 학관과 중앙도서관을 포함한 교정 전역에 꽃처럼 넘실대던 pc에 피가 끓는 사람도 있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목표 의식이 사라지고 대학의 명성이 곧 자신에게 그대로 주어지는 양 굴었다. 적지 않은 수가 학교를 견디지 못한다. 누군가는 전공을 잘못 고른 탓이라며 전과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대학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시스템을 비난한다. 초 중 고등학교를 계속해서 한 동네의 친구들과 다닌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과에 단 한명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상황에 힘들어하기도 했다. TV에 나오는 대학생이란 그저 화면 속 신기루일 뿐이라는 것을 절감하기 전에 그나마 자신에게 맞는 동아리에 가입하거나 전공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불태울 수 있는 경우는 행운이다.
“그래, 만나서 반갑다. 점심 먹었어? 어디, 커피라도 한 잔 할까?”
“저는 율무차 마시겠습니다.”
대뜸 굳어서 대답한다.
종이컵에 율무차 한 잔. 현규는 고개를 꾸벅 하고는 공손하게도 그 잔을 두 손으로 받았다. 둘이서 학관 뒤편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그늘이 진 데다가 마침 담배 피는 사람도 근처에 없다. 오늘은 운이 좋다.
“무슨 과 다녀? 나는 영문과인데.”
“법학과입니다.”
면접이라도 보는 듯, 굳은 얼굴에 웃음이 나와 버렸다. 교수님이 면접때 내게 느낀 게 이런 거였을까.
“긴장 풀어. 내가 무슨 교수라도 되니? 어깨 힘 빼고, 불편하면 난 그냥 일어날 테니까.”
“아, 아닙니다.”
얼굴을 붉히며 현규가 벌떡 일어나려다, 도로 앉았다. 내가 갈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나이 차이가 적지 않은 선배니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인상이 약해서인지 선배라고 날 불편해 하는 후배는 별로 없었다. 대학 졸업반일 때도, 대학원에 들어온 후에도 마찬가지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올해는 ‘조명’에 한 번도 안 갔는데.”
“작년에, 무대에서 봤습니다. 저… 형이 학교 선배라서, 연극제 보러 왔었는데.”
“충청도에서 연극제를 보러 올라와?”
“저, 재수 했습니다. 형은 작년에 현역으로 들어가서….”
느리고 적은 말에도 상황은 대충 잡혔다. 쌍둥이 둘이 같은 학교에 시험을 치고, 둘 중 하나만이 합격하고 박현규는 서울에서 재수를 한 모양이다. 꽤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을 텐데 형이 연극제에 초대했다고 응하는 걸 보니 보통은 아니다.
“형이 연극 했어?”
“예, 조명에 있었는데…, 2학년 되어서는 그만 뒀습니다.”
“아, 박진규?”
전혀 다른 인상의 24기 녀석을 떠올렸다. 눈매가 날이 서 있었던 법학과 박진규는, 처음부터 연극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연기를 하고 싶어했지만 연습에도 열의가 없었고, 배역의 대사 수가 승부거리인 듯 굴었다. 평준화가 되지 않은 지역의 일류고 수석 졸업생들이 종종 보이는 특성을 고스란히 가진 녀석이었다. 어쩐지 그 뻣뻣함에 원진희가 떠올라서 유심히 보고 있었는데, 연극제에서 조연을 맡고 나서는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
서투른 거야 누구나 처음엔 마찬가지다. 발성이 딸리고 억양이 분명하지 않다고 꾸짖긴 해도 그것만으로 누군가가 연극에 맞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진규가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아아 역시, 라고 생각했었다. 쌍둥이라면, 꽤나 다른 쌍둥이다. 얼굴로 닮지 않은 걸 보면 이란성인 걸까.
“연극 한다니까 박진규가 안 말려?”
웃으며 물었다. 박현규가 고개를 마구 내젓는다.
“혀, 형이랑은 다르니까요. 저는, 무대에, 그 소리들이 너무 좋아서…. 연극은 그 때 처음 보았는데요.”
“그랬구나. 그 뒤로는 연극 뭐 본 거 없고?”
“저, 작년 가을에요, 대학로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학원 끝나면 곧장 가서, 지하철 1호선,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관객모독, 난타에다 풋루스 같은 뮤지컬류도 다 보고.”
꽤 유명한 제목들이 줄줄이 입에서 나온다. 지난 가을부터 보기 시작했다면 상당한 양이다.
“어느 게 제일 좋았어?”
“지하철 1호선이요.”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박현규의 눈이 빛났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눈이다. …원진희가 생각났다. 내가 보고 싶었던 건, 원진희가 저런 눈을 하는 거였다. 저런 눈을 할 때는 날 안을 때 뿐이었다. 거칠게 내 입 속을 혀로 휘저은 직후나, 내 안으로 밀고 들어올 때, 원진희는 저런 눈을 했다. 목마른 것 같은, 열망의 눈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랬을까. 그의 목을 끌어안는 내 표정이 그랬을까. 뜨겁게, 눈물 흐를 듯이 달아오르던 내 눈동자도 그런 빛을 띄고 있었을까.
“그거 좋지. 초연 때랑 많이 바뀐 거 알고 있어?”
“예, 작년에 보고 얼마 전에 보니까, 또 바뀌었더라구요. 거기 음악이 너무 좋아서…, 각본도 연기도 좋지만요.”
“응. 편곡이 김민기씨일 걸. 연출이랑. 최고지.”
그의 얼굴을 지우듯이 박현규의 말에 보조를 맞춰 주며 웃었다.
“예, 저, 안되는 거 알지만, 녹음 떠 왔어요. 너무 좋아서.”
박현규는 오른쪽 가슴에서 그를 닮은 검정색의 투박한 mp3p를 꺼내 보였다.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그런데 어떻게 법학과를 갔어? 별로 안 어울리잖아? 연극이랑 법학.”
“아니에요, 법학도 좋아해서요. 재미있어요. 저 민총-, 아, 아니 민법총칙이랑 법학개론 듣고 있는데, 꼭, 좋은 음악 들었을 때처럼 쩌릿해요.”
그가 벙싯 웃는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내애의 얼굴은 저런 빛을 낸다. 나는 다시 원진희의 생각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에게 내가 그런 존재이기를 바랐었다. 그가 무언가를 갈망하기를, 내가 음악 소리에 취하고 커피 향에 취하듯이 그에게도 무언가 간절한 것이 생겨나기를. 하지만 모든 것은 원진희에게 닿는 순간에 그의 것으로 녹아들 뿐, 그의 갈망이 되지는 못했다.
“나 그거 CD 있어.”
뒤적여 CDP를 꺼냈다. CD 지갑에 들어 있는 몇 장의 CD 중에 지하철 1호선 음반을 찾은 순간, 박현규의 눈이 빛났다. 나는 CDP에 들어 있었던 나카시마 미카의 ‘MUSIC'음반을 꺼내고 지하철 1호선 CD를 넣었다. 오래 된 CDP의 젠하이저 이어폰 한 쪽을 박현규에게 건넨다. 주저하다 받은 끝을 왼쪽 귀에 걸치길래 재생 버튼을 눌렀다. 내 손에 있는 다른 한 끝에서도 낮은 음악소리가 새어 나온다. 나른하고 편안한 느낌. CDP에서 들리는 노래는 역동적이고 힘찬데도, 나는 마치 유키 쿠라모토의 음악을 듣는 듯이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