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그 남자 이야기, 7
“지윤아.”
선배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심장이 제멋대로 뛰기 시작한다. 선배도 결혼을 하고 떠나간다. 내 곁에 남아 있지 않는다. 선배가…
“나랑, 같이 살래?”
손을 내밀었다. 선배의 말은 원진희의 것과는 다르다. 선배는 원진희가 그런 식으로 나에게 대한 것에 화내 준 사람이었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그 말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고. 그러니까 선배의 지금 이 말은, 내가 오해했던 그 때의 표현이었다. 원진희가 내게 했던 말. ‘여기서 살아’,에서 내가 떠올렸던 그 벅찬 기대감.
…하지만.
네, 라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선배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 때문에 더더욱.
“역시… 안 되겠지?”
웃으며 선배가 말을 돌렸다.
“…죄송해요 선배.”
선배의 손이 내 머리 위로 올라왔다. 나는 놀라지 않는다. 선배의 손이 내 머리카락을 흩어 놓는다. 가늘고 긴 선배의 손가락이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선배는 웃고 있다. 젖은 눈으로 웃고 있다.
“줄곧 널 좋아했어.”
“…선…,”
“그냥 듣고 있어 줄래?”
말을 멈추었다. 선배는 여전히 웃고 있다.
“교양 수업을 같이 들었어. 2학년 때, 듣기 싫어서 미적거리다가 1학년들 잔뜩 있는 곳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거기서 널 봤지. 눈 한번 교수님한테서 떼지도 않고 열심히 필기를 하는 얼굴이 눈에 익었어. 우리 과 애다 싶었지. 그러더니…, 수업이 마치니까 곧장 귀에 이어폰을 꽂고는 나가더라. 단정하게 백팩을 양쪽 어깨에 메고는, 뒤 한 번 안 돌아보고 전공교실로 가더라.”
선배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때의 일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까 원진희랑 같이 산대. 지방에서 올라와서, 부잣집 도련님이 방 한 칸을 내어 준 거라고들 했지. 나는 그 녀석이 싫었어. 네가…, 결석하거나 늦게 지친 얼굴로 오는 날이면, 항상 그 녀석은 평소보다 들뜬 얼굴을 하고 있었어. 그래서 나…, 네가 말하기 전에 반쯤은 짐작하고 있었어.”
선배는 나와 닮은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시선을 돌리면 거의 선배가 있었다.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행동을 하면서 선배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깐깐하다고들 해도 나에게만큼은 자상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선배를 오해한다고 생각했다. 선배가 내가 듣는 가수를 알고 여행길에 내게 시디를 선물했을 때에도, 유독 닮은꼴인 내가 생각났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원진희를 탓할 자격은 없다. 선배는, 그 오랜 시간동안을 날 보고 있었다는 거다. 영국으로 가면서도 이 집을 내게 빌려준 건, 선배 나름의 사슬 아니었을까. 나는 왜 그걸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하고.
“좋은 선배로 따라 주어서 그걸로도 좋다고 생각했어. 지금도 그 마음은 그대로고. 그러니까 부담스러워하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선배는 웃고 있다.
“그래도 명확하게 해 놓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다, 고 생각해서 말한 거니까. 만약 부담스럽다면 잊어버려 주면 좋겠고.”
“…선배 저….”
“자, 이걸로 끝.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야.”
선배는 일어나서 자기 접시를 씻었다.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천천히 정리를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호흡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내 접시에 놓인 만두를 먹었다. 만두는 따뜻했다. 이 더운 날씨에 입 안에 들어가는 만두는 뜨겁지 않고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입 안에서 만두 속이 부드럽게 씹혔다. 나는 남김없이 만두를 먹고 일어나 설거지를 했다. 선배 방 손잡이를 잡아 보았다. 묵직하게 잠긴 것이 느껴졌다. 똑 똑 두 번 노크를 해 보았지만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
뒤척이다가 아침 일찍 눈을 떴을 때 선배는 보이지 않았다. 선배와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듯이 아침마다 선배가 나간 뒤에 일어나곤 했지만, 오늘은 겨우 5시였다. 작은방 문을 열어 보았더니 스르륵 열렸다. 방 안은 비어 있었다. 이불이 개어져 올려진 건 언제나의 아침과 같았지만 오늘은, 선배가 들고 온 노트북도 선배의 수트케이스도 보이지 않았다. 완벽하게 선배가 오면서 가지고 온 물건이 모두 사라져 있는 것이다.
…돌아갔구나.
한국에는 선배 아버지의 집도 있었다. 선배는 거기로 갔을까. 아닐 것이다. 선배는 평소에도 아버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긴 했지만 그래도 가끔 입을 열어 들려주는 가족의 이야기는 주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도 선배가 혹시 돌아올지 몰라서 이불을 도로 내려놓았다.
선배가 만들어 놓은 스크램블 에그가 없는 아침이었다. 토스트에 버터만 발라서 한 쪽을 먹고 앉았다. 이걸로 끝, 이라니,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면 된다, 니. 선배도 그게 불가능한 걸 알면서.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거라면 선배는 이렇게 떠나지 않아도 되는데. 냉장고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지도 않고 이렇게 가 버리다니.
갑자기 집에 있는 것이 불편해졌다. 내가 이 곳에 있어도 되는 것인지. 선배가 영국에서 돌아올 때까지 이 집을 관리하는 게 선배가 내게 부탁한 거였다. 그럼 선배는 처음 계획대로 돌아오는 걸까. 아니면 영국에서, 어머니와 함께 자리를 잡는 걸까. 아무 것도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어떻게도 움직일 수 없었다. 가방을 챙겨서 집을 나왔다. 나는 여전히 백 팩을 양쪽 어깨에 맨다. 가방이 무거운 것도 있지만, 한쪽 어깨로 매는 것이 영 익숙하지 않았다. 고등학생이냐고 놀리던 동기들도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게 되어 버렸다. 그걸 좋게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내 뒷모습을 봐 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따뜻하고 행복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애정과는 다른 무언가, 마음을 받는 것이 아무리 기쁘더라도- 그 답을 해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 거였겠지, 원진희도. 설사 내가 줄곧 보고 있다는 걸,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도, 그게 기뻤더라도, 응해줄 수는 없었을 거다. 그러니까….
가슴이 지끈 아렸다. 문을 잠그고 건물을 나왔다.
학교에 와서 들르는 곳은 항상 교수님의 방 정도였다. 수업이 있는 시간에 거의 맞추어 강의실로 가고 나머지 시간은 교수님 연구실에 딸려 있는 방에서 머물렀다. 원래는 교수님 방을 통해서도 갈 수 있고 복도 쪽의 문을 통해서도 갈 수 있지만 대개는 캐비넷 같은 것으로 막혀 있었다. 두 방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문을 한쪽으로 해 두는 편이 보안상 좋다는 이유였다.
조명에서 원진희를 만난 이후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교수동에서 보냈다. 교수님은 집중할 때에는 주변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하셨다. 다른 방에서 나는 조교에게 지급되는 컴퓨터로 메모리 스틱을 꽂아 번역을 하고 있었다. 교수님 방에서 옆방으로 가는 문은 닫아 두고 있어서 혹시라도 손님이 들어오더라도 내가 작업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킬 염려는 없었다. 옆방에 있었지만 교수님과는 별로 이야기할 일도 없었다. 수업이 있을 때만 잠시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교수님은 내가 갑자기 조교실에 틀어박혀 있는 것에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보통 여덟시 반 정도에 교수님은 출근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아홉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교수님은 오지 않았다. 오늘은 1교시가 없는 날이긴 했지만 교수님은 항상 같은 시간에 출근하시곤 했었다.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슬슬 들기 시작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한지윤입니다,”
“내 방이냐?”
수화기 너머에서 교수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교수님 오늘 2교시 수업 있으신데요….”
“알아, 과 조교한테 연락해서 오늘 결강이란 이야기 좀 해 줘. 지금 병원인데, 일찍 들어가도 4교시나 되어야 갈 것 같다.”
병원, 이라는 말에 갑자기 심장이 쿵쾅, 소리 나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도 여기로 좀 와 주면 좋겠다. 연대 세브란스 응급실인데, 곧 외과병동으로 옮길 거야. 외과병동에서 현진이 이름 대고 들어와.”
“…현진선배요?”
“그래. 현진이 지금 여기 있어. 새벽에 교통사고 나서. 학과 일 처리하고 최대한 빨리 와라.”
교수님은 뭔가 더 이야기를 하려다가 마는 듯이 전화를 뚝, 끊었다.
넋이 나간 듯이 영문과 학과실에 가서 교수님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나는 정신없이 택시에 탔다. 세브란스 병원은 신촌 역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게 떠올랐던 것이다. 택시에 오르고 나서야 방에 원고를 그대로 펴놓고 왔다는 사실을 떠올렸지만 되돌아갈 생각은 나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 하루 그 방은 잠긴 채일 테니까.
일반외과 병동에서 현진선배의 이름을 댔을 때, 막 교수님과 마주쳤다. 교수님은 집에서 입는 옷차림 그대로인 듯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를 보고는 손짓했다. 1인실의 새하얀 병실에 선배가 누워 있었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한 쪽 다리와 한 쪽 손에 깁스를 한 채로 퉁퉁 부은 얼굴이 선배라는 걸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수트케이스 들고 새벽에 횡단보도를 건넜단다. 목격자가 있어서 다행이었는데…, 파란불에서 다 건넜는데 뭔가 주우러 다시 횡단보도로 돌아갔다더라. 깜빡거릴 때 지나가던 트럭에 받혔어.”
교수님은 나에게 전화했을 때보다는 훨씬 진정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진 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을 만큼 선배는 만신창이였다. 옆에 놓여 있는 수트케이스도 찌그러지고 긁혀서 원래 내가 알던 그 물건 같지 않았다. 꼼꼼하고 철저한 선배가 도로 횡단보도로 돌아갔다니. 달려오고 있는 차도 보지 못했었다니.
“손에 저거 쥐고 있었어. 뼈 나간 거 맞추고 하느라 빼냈는데 놓지 않으려고 해서 애먹었대더라.”
교수님이 탁자 위를 가리켰다. 은으로 만든 열쇠고리. L.H.J.
“그래서 널 불렀다.”
교수님의 목소리가 서늘했다. 선배가 이야기했을까.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저 열쇠고리를 누가 주었는지. 선배의 출국일에 맞춰서 급히 들고 갔던 열쇠 고리 끝에는 처음 그게 주인을 찾아 갈 때처럼 오피스텔의 열쇠가 꽂혀 있었다. 뭐 대단한 거라고, 저런 거,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다시 돌아와서.
“지갑에 내 명함이 들어 있어서 병원에서 나한테 연락했다. 저 녀석, 그 흔한 핸드폰도 없지 않냐. 다른 친척들 들으면 까무러칠 일이라 친척들에게는 연락 안했고. 이 녀석 지 애비 만나고 싶어할 것 같지도 않았고.”
교수님이 담담히 말했다.
“현진이 곁에 좀 있어주지 않겠냐.”
“교수님 저는….”
뭔가 말하려다가 멈추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선배와 저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에요, 라고 말할 수 없었다. 피붙이보다도 더 믿었던 사람이었다. 내게는 식구들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교수님이 상상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 지금 나는 선배 곁에 있고 싶었다. 선배가 깨어났을 때 그 손을 잡아 주고 싶었다.
“…제가, 있을 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