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주변의 세계는 바뀌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그저 흐르고 있다.
"비교는 바보들의 놀이, 최선은 우리의 권리" 최성원씨의 노랫말을 주문처럼 되뇐다.
내 안에 있는 불꽃이 바깥으로 타오를 날이 올 게다. 그렇게 계획되어 있다면.
2.
미친듯이 책을 읽고 있다. 한 권을 읽는데 거의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2.1
온다 리쿠 "삼월은 붉은 구렁을"
강렬했다. 온다 리쿠의 책은 처음이다. 일본어로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나이를 몰랐다면 이건 그 나이대의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졸업한 수민이가 도서반에 있으면서 온다 리쿠의 책을 다 모아 놓았다고 메일에 썼던 것을 기억한다. 소녀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던 수민이에게 온다 리쿠는 참 매력적이었겠구나 생각했다. 그 녀석을 생각하면서 일단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차근차근 훑어 볼 생각이다.
2.2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빈느"
꽤 아팠다. 내게 연애 이야기는 둘 중 하나다.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오거나, 아프거나. 이 글은 아팠다. 마지막 반전 때문에 약간 울었다. 작가는 반전으로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반전이었다. 특이한 기법이 나타나서 처음에는 약간 당황스러웠는데, 후반으로 가니까 별로 의식되지 않았다. 조금 더 이 작가의 글을 읽어 보고 싶어졌다.
2.3
에쿠니 카오리 "마미야 형제"
에쿠니 카오리는 좋아하지 않아서, 아니 싫어하는 쪽에 가까워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고 나서는 이 작가 책은 손도 대지 않았다. 비교적 나랑 취향이 맞아 보이는 EBS 일본어 강사가 일본 소설 소개에서 다루어서 집어 보았다. 문체의 문제라면 원문을 읽으면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겠지만, 더더욱 내가 이 사람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만 깨달았다. 이건 네러티브의 문제다. 영화화된 이유는 알 것 같다. 이런 내용을 정작 남자들은 좋아할 수 있을까? 이런 정서가 대중적 정서라면 정말 쫓아갈 수 없다.
2.4
온다 리쿠 "밤의 피크닉"
서점에서 팔고 싶은 책 1위에 올랐다는 소식에 두 번째 온다 리쿠의 책으로 골랐다. 수학여행 대신 전교생이 24시간의 도보 행군을 하는 학교에서, 고등학교 마지막 시절의 24시간 행군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면서 그리는 이야기다. 역시 이 사람은 고등학교 정서에 능하다. 고등학생 당사자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사실 네러티브 자체는 평범하고, 한류 드라마에 나올 법한 소재도 등장하지만, 전개 방법이나 감정선의 묘사가 멋지다. 이런 도보 여행이라면, 정말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라면 아마 병원차에 실려 가는 쪽이었을 것 같지만.
2.5
오가와 요코 "미나의 행진"
원서로 읽고 싶었지만 귀국할 때 사오는 걸 잊어서 결국은 번역문으로 먼저 읽게 됐다. 오가와 요코의 글은 "약지의 표본" 이나 "임신 캘린더" 같은 류의 약간, 괴이쩍은 이야기와 "박사가 사랑한 수식" 같은 류의 따뜻한 글이 있다. 처음 읽은 건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어서 전자의 글들을 처음 읽고는 많이 놀랐었지만, 지금은 전자의 글도 좋아한다. "미나의 행진"은 후자에 가깝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작가가 박사에 대해 깊이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고 하면, "미나의 행진"은 미나에 대해서 깊이 애정을 가지고 쓴 글이라고 Y가 말했었다. 정말 그렇다. 따뜻하고, 애정이 넘치며, 행복한 글이다. 후기에 들어서 작가의 경향이 바뀌게 된 것일지, 아니면 양자를 계속 오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나는 오가와 요코의 글이 좋다.
3.
현재 가방에 있는 책은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와 온다 리쿠의 "유지니아". 주말에 읽을 생각이었지만 읽을 시간이 없었다. 수업 준비가 끝나면 읽어야지.
역장
2009/10/19 10:00
2009/10/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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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작가도 취향을 타니까…. 친한 후배 녀석은 에쿠니 카오리 문체가 참 좋다는데 난 도무지 좋기는 커녕 정이 안 가더라구. 이런 류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뭐라고 해도 베스트셀러 작가고. 박민규의 경우는 사람들이 이야기는 많이 하긴 했는데 남자작가라 잘 손이 안 갔었거든. 정작 읽어보니까 꽤 취향이더라. 다른 책들도 좀 읽어보려고 하는데 지금 몸이 좀 안 좋아져서 못 읽고 있음.
10월이 끝나야 좀 한가해 질 것 같아. 지금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네. 11월부터는 생활기록부 작업에 들어가서 한가하지는 않겠지만,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아. 진짜 한 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