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언제나 먼 곳을 떠돌고, 영혼은 늘 낯선 바다의 공기를 그리워한다.
 
1.
국민건강보험 관리공단에 귀국 신고를 하는 게 늦어져서 병원에 다니면서야 겨우 하게 됐다. 처리한 날에 병원에 갔더니 병원에는 제대로 처리가 되어 있었는데, 약국에 갔더니 보험말소자로 나온다고 약값을 14000원 내란다. 병원에서 지금 복귀가 되어 있는 걸 확인했다고 했더니 이 약사,
"전에 다니던 병원이면 조회도 안 하고 보험처리를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짜증을 섞어서 이렇게 말한다.
"전에 다니던 병원이 아니라 오늘 처음 온 병원이고, 어제 보험 관리 공단에 전화해서 처리했어요."
"병원은 최신 정보가 아니니까 옛날 정보로 조회될 수 있어요. 이쪽에서는 말소자로 나오는데 어쩌라구요."
약사의 언성이 높아졌다.
"처리 정말 하신 거면 삼사일 뒤에 오세요. 그때 환급 처리하면 되잖아요."
꾹 참고 현금이 얼마 없어서 카드를 내밀었다.
"그럼 일단 이걸로 결재해 주세요."
"환급 처리할 거잖아요. 카드는 안돼요."
카드는 결제 취소만 하면 되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지. 게다가 말끝마다 날 죄인 취급하는 듯이 짜증을 팍팍 섞는다.
"현금 없어요?"
이걸로 완전히 화를 참을 기분이 없어졌다. 바로 국민건강보험 관리공단에 전화를 걸었다. 어제 처리를 했고 병원에서는 보험급여자로 되어 있는데 약국에서는 보험 처리가 안 된다고 한다고. 카드 결제를 하겠다고 하니까 그것도 안된다는데 어째야 하느냐고.
"저희 쪽에는 완전히 처리가 되어 있으세요. 저희 쪽에서는 더 할 수 있는 게 없구요, 약국 시스템상의 문제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담당자 바꿔 주시면 저희가 통화를 하겠습니다."
말을 듣고 전화기를 들고 약국으로 들어갔다.
"건강보험 관리공단인데 받아 보세요."라고 했더니, 이 약사 또 인상을 팍 쓴다.
"기다리세요."
그러고는 조제실로 들어가버린다. 다른 약사가 내 표정을 보고는 놀라서 와서 무슨 일인지 물었다.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에 전화를 했더니 약사 바꿔 달라는데, 저러고 들어가네요?"
다른 약사가 황급히 가서 불러왔다. 짜증 덕지덕지 얼굴로 전화를 받는다. 그러더니,
"아..., 네, 그래요? 아, 네...."
컴퓨터 앞에서 뭔가 처리를 하고 아까 안 누르던 아이콘을 이것저것 누르더니, 곧바로 제대로 약값이 떴다. 약사는 전화를 끊고 나한테 주면서, 약값을 새로 불렀다. 4400원이다.
"공단의 시스템이 처리가 늦어서......."
아까의 짜증은 어디 갔는지. 거기다가 그러면서도 보험공단 핑계를 댄다. 나도 보험공단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대답 없이 카드를 내밀었더니 이번엔 아무 말도 안 하고 카드 결제를 한다. 그러면서도 죄송하다고 사과 한마디 안 하네.
더 이상 말 섞기 싫어서 그냥 약 받고 나왔다. 다시 내가 그 약국 가면 사람이 아니다.

2.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나는 자외선 알러지다. 겨울에도 선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외출을 못한다. 심한 경우엔 얼굴이 퉁퉁 부어서 눈을 못 뜰 정도로 된다. 손과 다리와 발도 마찬가지라, 여름에도 맨발에 샌들은 엄두를 못 낸다.
밥 먹는 자리에서 한 교사가, 자기 반에 자외선 알러지라고 선크림을 바르고 다니는 애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그런지, 말만 그런지 어떻게 알겠느냐는 게 요지였는데, 그 말을 듣던 다른 교사가 말을 받는다.
"요즘 애 엄마들이 애들을 너무 곱게 키워서 그렇다니까. 예전에는 그딴 게 어디 있어. 애들 한여름이고 봄이고 밖에서 민얼굴로 다 뛰어놀았지. 어릴 때부터 곱게 곱게 깨끗하게만 키우니까 아토피고 알러지고 생난리를 치는 거 아니야."
"요새 엄마들 보면 어릴 때부터 애들 선크림 발라주고 난리 치잖아. 그러니까 애들이 자외선에 약해지는 거야. 예전엔 자외선 알러지라는 말도 없었다고. 그 말 들어본 게 최근 몇 년 안이잖아 나도."
다른 사람도 거들었다.
내가 자외선 알러지를 일으킨 건 중3 때였다. 그때는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였고 체육 시간 같이 먼지와 자외선이 동시에 자극이 될 때만 발진을 일으켰었다. 고등학교 땐 새벽같이 등교해서 체육 시간 외에는 늘 교실 안에 있었으니 별로 문제가 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체육 시간이 지나면 항상 발진 때문에 고생했다. 학급 친구들은 놀려댔다. 자외선 알러지가 뭔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대학교 4년간 양산을 쓰고 다녔다. 제대로 된 선크림이 있는 줄도 몰랐고 알았더라도 살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체육회 다음날은 눈을 못 뜰 정도로 얼굴이 부어서 결석했다. 졸업을 하고 화장을 하면서 선크림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나한테 맞는 순한 것을 찾아서 살 수 있을 정도는 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선크림 없으면 밖으로 못 나가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괴롭지는 않다.
내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내 얼굴에 뭔가 발라준 적이 없다. 그래서 불만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환경이었다는 이야기다. 대학교 4학년 때 교육실습을 갈 때까지 화장도 한 적이 없다. 곱게 커서, 피부를 약하게 만들어서 알러지가 생긴다니, 그럼 수많은 식품알러지들은 도대체 무엇이며, 일본의 꽃가루 알러지는 뭐냔 말이다.
제대로 된 선크림을 바르게 되면서부터 피부는 꽤 많이 좋아져서, 요즘은 피부 나쁘다는 소리는 별로 안 듣고 산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십 년 넘게 이러다 보니 익숙해졌다. 배낭여행을 갈 때면 꼬박꼬박 면세점에서 선크림을 사고, 그것도 피부에 독하긴 하니까 클렌징도 꼼꼼히 한다.
피부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건 자외선 알러지를 일으키고 온통 얼굴에 트러블 때문에 다들 놀려대던 그 시절을 다 지나서, 나 자신에게 경제력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다. 젊은 어머니들 욕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알러지에 대해서 무지한 걸 보고 있으면 울컥울컥 화가 난다.
예전엔 자외선 알러지 같은 것 없었다, 는 것.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건 부모들이 아이들을 약하게 키워서가 아니라, 공업발달로 환경이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기 예보에 자외선 지수를 보도할 만큼 자외선이 강해진 것도 최근의 일이니, 어르신들 어렸을 때 정말 자외선 알러지 같은 거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 시절엔 자외선 알러지를 가진 사람도 자신이 자외선 알러지인 걸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볕에 나간 다음엔 온몸이 퉁퉁 부어 괴로워하면서도 왜 그러는지 모르고 괴로워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썬크림을 바르고 등교해야만 한다는 그 아이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면, 나는 그 아이가 너무 가엾다. 평생 외출할 때마다 나처럼 살 걸 생각하면 안쓰럽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던 그대로 혹시 그 아이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더더욱 가엾다.
 
2009/05/19 10:23 2009/05/1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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