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이야기, 3
전철역에서 내려서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10분 정도를 와야만 하는데도 지하철역은 학교 이름을 따서 지어져 있다. 다른 역에서 내리는 것보다야 이 역에서 내리는 게 가까운 게 사실이지만. 마을버스를 타는 정류장 근처에는 아침 일찍부터 정신없이 지하철에서 졸린 눈을 부비며 떠밀리는 비 기숙사생을 노린 에스프레소 점이 있다.
한국에서 아마도 가장 큰 도시일 이 ‘특별시’에 처음 올라왔을 때를 기억한다. 대학을 찾아오기 위해서 지하철 노선도를 보니 대학 이름을 딴 역이 있었다. 어머니 몰래 논술고사를 치러 올라왔다. 3학년 담임선생님은 내게 비행기 티켓을 쥐어 주셨다.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만 논술 시험을 치러 갈 수 있어서였다. 나중에 갚아, 라고 웃으시더니 정작 나중에 갚으러 찾아갔을 때는 짐짓 화난 얼굴로 사양하셨다.
합격하던 날, 어머니는 울었다. 어머니는 고향에 있는 국립대학을 다니기를 원했는데, 내가 그 날짜를 이 대학으로 응시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사립대를 보낼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국립대조차도 집에는 돈이 없었다. 장학생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 어머니의 소망을 저버리고 나는 여기로 와 버렸다.
떠나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 고장을 떠나고 싶었다. 바닷바람이 습윤한 바람을 불어대는 눅진한 여름, 소금 냄새 묻어나는 건조한 겨울, 흘러가는 사람들이 멈춰 있는 사람보다 많은 그 고장을 떠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아니, 떠나고 싶었던 것은, 붉은 얼굴로 누워 있는 누군가였을까. 아니면 술기운에 허리띠를 빼어드는 그 사람앞에서 몸을 웅크리고 그저 버티고만 있었던 다른 누군가였을까. 참지 못하고 나다니는 누군가였을까. 아니면 힐끔대는 사람들의 시선이었을까.
에스프레소 샵에서는 커피를 태우는 냄새가 난다. 나는 조금 얼굴을 찌푸리고 막 도착하는 버스에 올라탄다. 산길을 지나 학교 교문 안으로 들어가, 중앙 도서관 앞에서 내렸다. 대학 안은 항상 온도가 조금 낮은 기분이 든다. 산이라서일까. 3월 늦게까지 학생들은 코트를 입고 다녔고, 여름에도 다른 곳보다는 선선하다. 오늘은 꽤나 햇살이 따가운 편이지만. 나는 그늘을 따라 교수님의 연구실까지 천천히 걸었다. 학생회관에서 빠져나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학부 연극 동아리 중 하나인 ‘조명’ 사람들이었다.
“지윤선배, 오늘 등교일이세요?”
“아니, 오늘은 조교 일 때문에. 오늘 동아리에 무슨 일 있어?”
“아뇨, 그냥 같이 이런 저런 이야기 하는 거죠 뭐. 가을 연극제 이야기도 좀 하고요. 야야, 인사해. 우리 음악 담당하셨던 한지윤 선배님. 99학번이시고, 지금은 ‘모노드라마’에 계셔.”
새내기 같아 보이는 쑥쑥한 얼굴들이 머쓱하게 인사한다. 안녕하십니까아, 이십오기 누구누구입니다. 맞춘 듯한 인사도 그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쿡쿡 웃음이 배어 나오는 것을 겨우 참고 진지하게 응응, 반갑다, 대답한다.
“참 선배, 그 쪽은 어떻게 해요? 올 가을에 무대 올리실 거죠?”
몇 기 아래의 회장, 02학번인 오형기였다. 나는 난처하게 웃었다. 원진희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동아리 방에 가지 않았다. 연극제의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음악을 담당할 사람이 새로 하나 생겼으니 내 자리가 비어도 그리 곤란하지는 않겠지 위안한다.
“저희 쪽에도 좀 들러 주세요 선배. 고등학교 때 선배 보고 들어왔다는 애가 하나 있는데.”
“무대에 선 것도 아닌데 날 어떻게 봐?”
“저희 쪽 음악 담당하는 애인데, 선배가 무대 아래에서 음향기기 만지는 걸 봤대요.”
대학원 연극 동아리 ‘모노드라마’는 대개 학부에서 연극 동아리였던 사람들이다. ‘조명’ 출신의 멤버는 지금 나와 원진희 외에 둘이다. 학교에 있는 여러 연극 동아리들이 벌이는 가을 연극제의 주체는 학부 연극 동아리들이지만 ‘모노드라마’도 항상 찬조 형식으로 참여했다.
“이번에는 창작극 올릴 거야?”
“예, 창작극이고. 대본은 제가 초고 잡고 같이 의논 하려고 하는데. 음향이 잘 안 잡혀서. 선배 언제 한 번 들러서 그 후배 녀석 좀 지도도 해 주시고요.”
싱글싱글 오형기가 웃는다. 새내기일 때는 어떻게 저런 애가 연극을 하나, 싶게 수줍더니. 의외로 재능은 극작 쪽이었다. 오형기가 어떻게 미시경제학 같은 것을 파고드는지 때로 신기하게 느껴진다. 아버지가, 모 기업의 사외이사라고 하셨던가.
“그래, 시간 내서 한 번 들를께. 밥도 사 주고 그래야 되는데 지금은 교수님 호출이라 안 되겠네. 담에 보자. 새내기들도 잘 가라.”
손을 가볍게 들고 걸음을 재촉했더니 새내기들이 또 꾸벅 고개 숙인다. 안녕히 가십시오 선배니임. 후배들이나 선배들과는 사이가 나쁜 적이 없다.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호의와 적당한 베품과, 받음. 유독 힘든 건 원진희였다. 사감이 들어갔으니 그런 거지. 그렇게나 바람 같은 녀석. 내 곁에 머물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섣부른 기대를 하고.
교수님의 방이 있는 연구동까지 걸어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어느새 등줄기에 송글 땀이 맺혔다. 땀을 많이 흘리는 편도 아니고 몸은 찬 편이지만, 땀을 흘리지 않아서인지 심하게 더우면 오히려 탈진을 일으키곤 했다. 위태해질 정도로 더운 여름에는 버스에서 내려 교수동까지의 길도 천천히 호흡을 느리게 해야 했다.
교수님의 연구실은 2층 끝방. 북향인 탓에 여름이면 꽤 빛이 들어온다. 문 앞에 플라스틱 판에는 ‘수업중’ 이라고 되어 있지만, 수업 중을 알리는 플라스틱 판이 두 개라는 걸 나는 안다. 초록색은 실제 수업중이라는 것, 노란색은 방 안에 있다는 뜻이다. 똑똑똑똑똑. 노크는 다섯 번. 쉼 없이 연속. 교수님은 소리를 죽이고 걸어와 문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문을 빼꼼 열고 나를 보셨다.
“올해 1학년들은 왜 저 모양인지 모르겠어.”
내가 따라 들어올 것을 알고 교수님은 그대로 등을 돌려 들어가 버린다. 나는 문을 닫고 빙긋 웃었다. 수업 중에 누가 또 질문에 서툰 대답을 했으리라. 나이 때문에 밀려서 1학년 개론 수업을 해야 한다고 한숨을 쉬시더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1학년에 대한 푸념을 늘어 놓으셨다.
“부른 건, 이거 좀 번역해 보라고.”
교수님은 두툼한 원고 뭉치를 내게 내밀었다. 중편 정도의 분량이다. 항상 원고는 이렇게 출력본으로 왔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인지.
“가을쯤에 광고 때리면서 낼 거란다. 한국계 캐나다인 여류 작가라네? 영문 중역본은 아니고. 그 작가가 영어로 쓴 거. 너무 어릴 때 캐나다로 가서 우리말로 소설은 못 쓴다고.”
“예에.”
“대충 읽어봤는데, 읽을 만 하더라. 자기 어렸을 때 이야기인가 봐. 70년대 한국 분위기가 꽤 생생해.”
첫눈에 들어오는 문장들이 꽤나 미려하다. 꼭 비교한다면 르 귄 분위기일까. 그 할머니는 장르 쪽이지만.
“현진이 들어왔지?”
교수님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나는 한참만에야 놀랐다. 지도교수도 아니었고 수업을 하신 것도 아니다. 이름이나 얼굴 정도야 알 수 있지만, 진학하지 않은 학생의 현재 위치까지 아실 수 있을까.
“현진이 엄마가 나랑 사촌간이거든. 그래서 들었지. 그 녀석, 그 나이 먹도록 대체 정착을 못한다고 푸념이더라.”
“…예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그렇게 대답한다.
“너 혹시 걔 애인 알고 있어?”
“…예?”
“영국에서 꽤 괜찮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공세를 해 왔나봐. 교포 2세인데. 엄마는 맘에 들어 하는데 현진이가 무척 강경했다네. 나보고 알아보라나. 근데 내가 그 녀석을 뭘 알아야지. 말이 좋아 오촌이지, 영국 들어가기 전에도 잘 알고 지내지도 않았는걸.”
“죄송합니다. 사적인 이야기는 별로 들은 게 없어서요.”
사실이었다. 선배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영국에 가게 되었을 때에나 겨우 어머니의 직업에 대해서 들었을 뿐이다. 선배가 교수님과 오촌 숙질간이라는 것도 오늘 알게 되었는데.
“그래, 그럼 그거, 출판사에서는 두 달 마감 줬으니까, 두 달 내로 좀 해봐. 네가 넘기면 검토 좀 하고 마감 좀 넘겨서 내지 뭐. 어차피 저 쪽에서도 마감 지키는 거 기대 안할테지.”
교수님을 모르는 사람이면 돌려서 말하는 압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교수님은 진심이었다. 그래도 가능한 한 빨리 해서 넘겨야 될 테지만.
“그럼 가 봐. 내일은 수업 있으니까 아침에 오고.”
“예.”
일어나서 꾸벅 인사하고 연구실을 나왔다. 문의 잠금장치를 꾹 누르고 닫는다. 생각보다 일찍 끝나 버렸으니, 정말 오형기의 말대로 오랜만에 ‘조명’ 동아리 방이나 들러 볼까. 아니 그 전에, ‘모노 드라마’를 들르는 게 먼저다. 가을 연극제에 참석하는지, 한다면 나는 뭘 하면 되는지 물어 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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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백 글이 먼저 올라오는 바람에, 지난 화 남은 반을 그냥 붙여 버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