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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2007년 일본에 온 이래로 그렇게 드라마를 챙겨보게 되지는 않았다. 바쁜 생활도 생활이지만 무엇보다도, 일본 드라마의 패턴성이 마음에 들지 않게 된 것이다. 독창적이고 섬세한 각본가들은 줄어들고 간판 스타를 내세운 단순하고 자극적인 스토리의 드라마가 주류를 이루게 된 것도, 내가 일본 드라마를 전만큼 좋아하지 않게 된 이유다.
후지TV와 아사히TV, TV도쿄, 등등에서 여러 드라마를 방송하는데, 낮시간의 오후 2시경의 드라마(소위 말하는 '아줌마'들이 주로 보는 드라마라, 엄청나게 진흙탕같은 이야기가 벌어진다)를 제외하면 보통 13화 전후에서 끝난다. 13화 전후에 한주에 한 번 방송하게 되므로 실제로는 석달간. 키무라 타쿠야가 주연한 '체인지', 우에노 주리와 에이타가 주연한 '라스트 프랜드' 가 여기서 본 비교적 나쁘지 않은 드라마였다. (전부 후지TV구나 그러고보니) 하지만 엄청 대 저택을 싼 방세로 제공하면서 거주자들을 경쟁하게 만드는 이야기라든가, 몇 명의 슈퍼 중학생이 쇠퇴하는 학교를 구하기 위해 잠입한다거나, 여자 아이돌 지망생들 세명이 남장해서 데뷔하는 이야기라든가, 재벌급의 싸가지 여자와 아이 셋이 있는 가난한 홀아비의 좌충우돌 연애담... 같은, 현실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가 대부분이라는 게 문제다.
그러다가 이번 시즌, 가을에 후지TV가 몇 년간을 들여서 준비한 작품 '카제노 가-든'이 등장했다. 각본가는 '키타노 쿠니카라' 시리즈로 알려진 실력파.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평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의 신 시리즈는 꽃으로 유명한 홋카이도의 '후라노'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작품의 무대가 되는 '가든' 을 만들기 위해서 몇 년간 실제 꽃과 나무를 재배해, 자연스러운 실외 배경을 만들어 낸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카제노 가든'은 암 선고를 받은 한 중년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남자, 장난을 좋아하고 여자에게 인기가 있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참 쓰레기같은 인생을 살아온 남자다. 어릴 때는 의사 놀이를 한답시고 같은 반 여자애의 옷을 벗기고(...애들 장난이라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중 고등학교때는 같은 학교 여자애들을 신사로 불러내 겁탈(.) 결혼하고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았지만 바람기가 문제가 되어서 결국 집을 떠난다. 성공한 의사이긴 하지만 집은 돌아보지 않으면서도, 아내 급의 불륜(.) 상대에다 딸 같은 나이의 여자와도 묘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런 남자가, 암 선고를 받으며, 올 해를 넘기기 힘들 거라는 사형 선고를 받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손을 쓰기엔 너무 늦은 시간. 남자는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자신의 가족들에게 속죄하기 위해서 후라노로 돌아간다.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은 비밀로 붙이고.
불치병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라니, 전형적이고 진부할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가족들과 남자 사이의 감정 라인이 지극히 일본적이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이지 않도록 선을 유지하면서도 이야기는 각자의 캐릭터의 인간성을 충분히 살려 나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후라노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게 되는 것은 부수적인 보너스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일본에서는 이 작품에서 사용된 꽃들에 대한 DVD가 출시될 예정이다. 그 정도로 이 드라마에서 다루는 후라노의 자연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작가 자신이 후라노에 살고 있어서인지, 지역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드라마 전체에 흘러넘친다.
귀국 전에 DVD가 출시되면 구입하는 걸 심각하게 고려중이다. 그 정도로, 내가 일본 드라마를 버릴 수 없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