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언제나 먼 곳을 떠돌고, 영혼은 늘 낯선 바다의 공기를 그리워한다.
 
오늘은 수능 시험일이었습니다.
저는 수능 감독이었지요.
시험장에 직접 들어간 것은 아니고, 시험지 검수 위원을 맡았습니다.
다행히 오늘 하루동안 단 한명의 학생도 울면서 시험본부로 오지 않았어요.
매년 밀려 썼다거나 하면서 무릎 꿇고 우는 학생들이 한 명쯤은 있지요.

사실 이번 수능을 망쳤다고 해도,
재수를 한다고 해도, 긴 인생에서 보면 별 거 아니에요.

저는 26살에 새로 대학에 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졸업한 것은 서른살이 되는 해 봄이었지요.
정확히 말하면 대학을 하나 졸업한 후에 새로 들어간 거라
늦깎이라는 표현을 쓰기에 조금 쑥쓰럽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26살에서 30살까지의 그 대학 시절이
제 인생에서 무척 많은 변화를 준 것 같습니다.

교사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도망치듯이 선택한 길이었지요.
하지만 그 곳에서 만난 제 동기들은 무척이나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국립대의 야간 법학부.
직장 생활을 하다가 대학을 가려고 공부를 시작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정리해고까지 당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여상을 나와 법 관련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뒤늦게 대학을 들어온 동기가 있었습니다.
공고를 나와 공장에서 근무를 하다가, 공대로 진학하고
다시 법대로 전과를 해서 우리와 함께 공부하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대학을 다닐 수 밖에 없어서,
입학금조차 구할 수 없어서, 장학생이 될 수 있고, 학비가 싼
우리 학교의 야간학부를 들어온 동기가 있었습니다.

내가 겪어 왔다고 생각했던 시련들이 사실은 아주 가벼운 것에 불과하다는
그런 사실을 친구들은 제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 달에 10만원만 나를 위해서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의 말을 하는 동기들로부터, 저는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여름방학, 학교의 지원으로 미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왔습니다.
그것 역시도 제게는 정말 황금의 경험이었죠.

이상하지요. 그 해에 저는 다른 해보다도 공부를 더 못했는데도
그 해에 임용고시에 붙어,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던 교사의 길에 들어왔으니까요.

저는 지금 중학교 교사를 하다가 공업계 고등학교의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저는 또 아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지금 학교를 졸업하고 여전히 열심히 살아가는 동기들의 소식을 듣고,
지금의 제 아이들이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미래를 쥐기를 소망합니다.

인생은 사실, 아주 작은 것으로도 바뀔 수 있지만요.
그것이 실패라거나 성공이라거나 하고 판단하기에는 어려운 일이에요.
제가 교사 시험에 계속 불합격하지 않았다면,
저는 그 대학에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마 인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 몰랐을 지도 모르고,
계속 해외여행이 어떠한 것인지도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고,
지금 실업계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도
인문계를 졸업하고 곱게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범하기 쉬운 실수를 범하며
아이들을 편견으로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물론 저는 아직 제 인생이 어떠한지 몰라요.
앞으로도 내 인생은 많이 바뀔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10대때부터 간직해 온 비밀스러운 꿈 하나가,
계속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로 계속되어도
그 꿈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인생은 끝이 아니니까요.
아직 지금의 시간들이 내 인생에서 어떤 기회와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지
판단하기엔 이르다고 믿으니까요.

저는 서른 한살입니다. 내년에는 서른 두 살이 되지요.
생각해보면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얼마 없어요.
하지만, 아직 인생은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오늘 시험을 치른 수험생들, 그리고 어쩌면 수능을 칠 수 없었을 누군가들.
매년 수능 시험일마다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는,
5년 늦게 대학에 들어왔던 내 동기같은 사람이 아직 세상에는 있겠지요.
그 모든 사람들이 지금의 상황을 단정짓지 않길 바랍니다.

완전히 해가 지고 밖은 어둡습니다.
내일 다시 해가 떠오를 것이 분명하듯이,
여러분의, 나의, 우리의 인생에도 아직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것이고
인생의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많은 아침들이 남아 있다고,
그렇게 믿습니다.
2004/11/19 19:34 2004/11/19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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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먼여행 2006/03/08 19:34 댓글수정 또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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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by Tirsha at 2004-11-17 18:20 x
    멈춰있고, 실패해서 주저앉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사람의 내부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나고 많은 것이 변하고 있을거에요.
    길고 긴 삶이라는 길의 초입인걸요. 아직.
    Commented by 루나벨 at 2004-11-17 20:26 x
    좋은 글 고마워. 언니도 힘내요-
    Commented by 카리스마Lee at 2004-11-17 20:38 x
    정말 좋은 글이네요. 저도 다시 저의 꿈과 미래를 생각해보게 되는 그런.. 좋은 글이었습니다. ^^ 고마워요
    Commented by 로무 at 2004-11-18 00:47 x
    좋은글^^ 그런데 음악 음질이 더 좋아진것같은 생각이 든다? 스킨도 이쁘고~그런데 글자는 읽기 힘듬OTL
    Commented by Crux at 2004-11-18 08:56 x
    가끔, 나리님 글을 읽고 용기를 많이 얻습니다.
    저 아직 어리니까, 늦지 않았겠지요.
    여러가지 사정에 의해, 1년여를 자포자기 하며 살아왔습니다.
    어제부터 다시 일을 하면서, 예전에 꾸던 꿈을 키워가려고 해요.
    나리님 덕분에 많은 용기를 다시한번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리님은 분명히 훌륭한 교사가 되실거에요.
    ^_^
    Commented by LORAIN at 2004-11-18 23:14 x
    공부.. 열심히 할께요! ㅠ.ㅠ
    Commented by sonnet at 2004-11-19 17:27 x
    우린 대충 15-20년 정도 남은 듯 한데, 긍정적인 성격이라면 그정도도 많이 남았다고 자위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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