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언제나 먼 곳을 떠돌고, 영혼은 늘 낯선 바다의 공기를 그리워한다.
 

8월 16일, 네째날. 라싸

6시 30분 초르덴 앞에서 남초행 단체 투어가 시작하기로 되어 있어서, 다섯시에 일어났다. 높은 고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탓에 밤엔 두어차례 깨어 먹은 것도 없는데 토해 냈다. 실제로 잠을 잔 시간은 서너 시간 정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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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지 못하고 아직 깜깜한 시간에 택시를 잡아 초르덴 앞으로 가니, 단체 투어가 대부분 출발하는 위치 답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항상 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파는 사람이 있기 마련. 아침을 먹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아침밥을 팔고 있는 수레가 몇 개 보였다. 중국식 아침밥이니 기름진 튀긴 빵이나 만두, 흰빵, 등이었다. 5시간 정도를 버스를 타고 가야 했기 때문에 빈 속이면 안되겠다 싶어서 만두 두 개를 샀다. 겉모습은 그냥 만두 같아 보였는데 안에 든 것은 중국식 영양밥이었다. 토한 뒤끝이어서인지 한 입 먹는 순간 속에서 거부해서 조금씩 조금씩 억지로 먹었다.

수많은 버스들이 오가는 가운데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왔다. 중국인들이 간식거리를 잔뜩 가지고 탔다. 한족들이 티벳으로 여행을 많이 온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어디를 가도 여행객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대부분 중국어였다. 시끌벅적 소란스러운 가운데 아직 어두운 거리를 뚫고 버스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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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삼십여분 정도를 달려 돌연 정차했다. 앞차가 꽉 막혀 있는 중이었다. 가이드가 상황을 보더니 뭔가 문제가 생겨서 진입할 수 없다, 여차하면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둘을 제외하곤 전원이 중국인이어서 다들 의사 소통이 되었겠지만, 나는 말 못하는 벙어리 심정으로 중국어를 할 줄 아는 J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꽤 오래 멈춰 있던 버스가 다시 출발하고 나는 잠들었다.

고속버스에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영상물을 보여 주는데, 일본과는 달리 차내의 스피커로 곧바로 방송을 한다. 처음 틀어준 것은 팝송의 뮤직비디오였는데 따라서 노래를 하는(흥얼거리는 게 아니라 노래하는 것이다)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곡조에 맞춰 큰 소리로 휘파람을 부는 사람도 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중국의 특색이긴 하지만. 잠시 후에 팝송 프로가 끝나고 개그 프로그램을 보여 주었는데, 일제히 버스 안은 왁자하게 웃음바다가 된다. 나는 다시 벙어리 심정이 된다. 인간 소외의 현장이다. 감기약을 먹어서인지 계속 졸려서 그냥 잠을 청하고는 푹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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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보니 차가 멈춰서고 있었다. 주변의 풍경은 절경이었다. 근처에 공안의 사무소가 있는 걸 보니 이 곳에서 뭔가 여행 심사 같은 것을 하는가 보다. 그래서 정차를 했나보다-하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뭔가가 또 발생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느긋하게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거나, 근처 가게에서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돌아오거나 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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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아가씨가 올라와 설명하길, 도로가 막혀서 현재 진입이 통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빠른 시간 안에 해결을 할 수 있으면 계속 갈 것이고 아니면 라싸로 돌아가야 한다고, 상황을 보고 있는 중이란다.(역시 중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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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것은 차 내의 사람들이었다. 저런 상황임에도 누구 하나 항의를 하거나 하지 않고 그런가보다 하는 표정으로 느긋하게 차 밖을 산책하거나, 차 안에서 바람을 쐬거나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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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밖에 그늘에서 쉬는 사람도 있고, 저 멀찍이 앞의 상황을 보고 오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 하나 언성을 높이거나 짜증을 내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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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상당 부분 걷히며 새파란 하늘 사이로 태양이 중천에 올라선 것이 보이기 시작할 때는 어느새 버스가 멈춘지 세 시간. 11시 30분 경에 다시 가이드가 올라와서, 동의를 해 준다면 라싸로 돌아가겠다 한다. 앞서 있던 차들도 거의 다 돌아가고 우리가 가장 선두인 위치다. 사인을 하고 어째서인지 J와 나에게 합해서 40 위안을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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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거슬러, 통과했던 문을 다시 통과해 돌아간다. 어느새 햇빛이 따갑다. 줄지어 서 있는 차들은 아직도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다시 라싸로 돌아와 버스는 한 식당 앞에 멈췄다. 점심 시간이 넘었다. 원래 투어에 점심 비용이 포함되어 있어서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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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는 중국식으로 밥과 반찬 여러가지가 나왔는데, 줄곧 잘 소화가 되질 않아서 조금만 먹다 말았다. 위 사진은 가장 수상했던 반찬. 저 도돌도돌한 건 첫날 성도에서 샤브샤브에서도 먹었는데, 해산물 같기도 하고.

한 사람이 우리를 보더니 말을 안 하는게 수상해 보였는지 뭔가 중얼중얼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데, 한국인이라는 중국 발음이 들린다. J가 중국말로 대답했더니 중국 음식은 입에 맞느냐, 그런 등의 질문을 한다.

환불 문제로 티벳에서의 도우미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 곳으로 오겠다 한다. 좀 있다가 도착한 청년과 함께 여행사로 가 보니, 천재지변으로 생긴 일이라 환불은 불가하고, 남쵸 호수의 입장료인 40 위안은 가이드에게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받은 건 둘 합해 40위안이라고 하니, 가이드가 떼어 먹었다는 어이없는 답이 돌아왔다. 이 곳의 가이드들은 대부분 가이드 고용 조합 같은데서 임시로 사람을 데려다 쓰는데, 일당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밥값, 쇼핑몰 등으로 남기는 것이 자신의 수입이 될 뿐이라 한다. 그러다보니 종종 말이 잘 안통하는 외국인을 상대로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그렇게 많은 속임수를 당하고도 또 방심했다는 후회와 함께,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불안감이 더해진다. 아마 일본 여행에서 이런 불편을 전혀 겪은 적이 없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외국 여행이라고 해도 영어는 대부분 통했는데(중학교 수준의 간단한 영어지만),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특히 한국인 같은 경우엔 중국인들과 너무 닮아서인지 외국인이라고 생각조차 못하고, 한국어를 자신들의 지방 언어 정도라고 생각하는지 계속해서 북경 공통어를 말하는 게 보통이다. 워낙 넓은 나라라 지방 언어들을 아는 사람도 드물고 하니, 낯선 말을 하는 중국인같은 얼굴은 곧 공용어를 하지 못하는 지방민, 정도로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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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나절 어슴프레 윤곽으로만 보였던 포틸라 궁은 어느새 파란 하늘 아래 선명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아. 날아간 우리의 오전이여.

J가 도우미 청년에게, 차 가게를 소개해 달라고 청했더니 도우미 청년이 흔쾌히 같이 가 주겠다 하는데, 택시가 두 번이나 가기를 거부한다. 외곽 지역인가 보다. 택시를 타고도 한참. 안쪽에 단체 투어팀의 버스가 잔뜩 보였다. 아아, 그런 가게였다. 그래도 계속해서 열심히 해준 청년을 생각해서 그냥 들어가보니, 티벳의 동중하초차와 고산녹차와 보이차 등등을 맛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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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빠른 동작으로 차를 덜어내는 아가씨. 오른쪽 빨간 상자가 쌓여 있는 건 보이차. 우리가 젊은 여행객이어서인지 가장 비쌀 저 차는 보여주기만 하고 팔 생각은 하지 않더라. 80년대산도 있고. 보이차는 묵을 수록 좋다고 하지만, 우려 내 주는 보이차는 그렇게 입에 맞지는 않았다. 나에게 보이차는 아직도 먼 벽이다.

고산녹차는 솔직히 우리 나라 지리산 녹차보다 나은 것 같지 않았고, 보이차는 취향이 아니어서 동충하초차를 한 팩 샀다. 300그램 한 팩에 260위안. 삼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니 꽤 비싼 차다. 우리 나라에서야 더 비싸지겠지만. 큰 맘 먹고 구입을 하고 J는 가족 선물용으로 이것 저것을 사니 청년의 표정이 밝아진다. 우리가 구매를 하는 만큼 청년의 수입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모를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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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 아래, 차 판매점을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내려 다시 숙소로 돌아와 그대로 쓰러졌다. 이 곳은 고산 증상도 고산 증상이지만 햇빛이 강해서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드는 것 같다. 세 시쯤에 들어왔는데 다섯시 반 정도에 깨었다. 밥을 거르면 밤에 더욱 괴로워 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녁을 먹으러 슬슬 나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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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의 거리. 햇빛이 너무 강해서 사진을 찍었더니 오히려 길과 집 쪽이 어두운 것처럼 나왔다. 노출 조정을 잘못한 모양이다. 하늘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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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점 앞쪽은 우리 나라에서 예전에 그랬듯이 판자 같은 것을 얼기설기 얽어서 얹었고, 그 앞에는 가스통(설마 실제 쓰는 것은 아니겠지만)이 그대로 밖에 나와 있다. 안 파는 것이 없는 가게다. 과자나 음료수부터 빗자루 같은 것까지.

이렇게 근처의 길을 천천히 산책하듯이 둘러본 것은 좋았는데, 큰 길로 나와보니 잠에서 덜 깨서 그런지 평소와 다른 길로 나간 것이었다. 대로와 만나서 여기가 어디쯤인가 봤더니 그저께 보았던 아리랑이 눈에 들어왔다. 체력적으로 소모가 심한 탓에 한식도 좋겠다 싶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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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현판에 김치 같은 것을 홍보해 놓았고. 바깥의 유리에는 태극 마크 비스무리한 것이 붙어 있다. (색깔이 노랑과 빨강인데다 빨강이 아래)

J는 돌솥비빔밥을, 나는 김치찌개를 주문하고 매운 닭볶음을 함께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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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 김치는 약간 작게 썰었지만 묵은 김치여서 무척이나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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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볶음은 한 번 튀긴 닭을 우리 나라와 비슷한 닭볶음 양념에 다시 볶은 것이다. 약간 기름지긴 해도 입에는 맞았다. 그리고 이 곳의 밥은 놀랍게도 중국 풍의 그 푸슬푸슬한 밥이 아니라 우리 나라의 쌀 품종과 비슷한 쌀로 만든 밥이었다. 약간 된 밥이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반찬보다도 밥에 감동했다. 이 곳은 음식이 대체적으로 간이 센 편이어서 다 먹지는 못했지만 밥이 들어가니 그래도 훨씬 상태가 좋아지는 것 같았다.

감기약을 먹고, 내일부터의 47시간의 기차 여행을 대비해 간식거리를 사러 수퍼를 찾았다. 알고 보니 우리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수퍼가 있었다. 고산병에 좋다는 홍경천 차를 팔고 있어서 세 캔을 사고, 기차 여행중에 먹을 과일이며 물 같은 것들을 사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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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호텔 1층이 슈퍼.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 슈퍼가 있다니. 고산병이 아니었다면 주변을 좀 더 둘러 보았을 것을. 마지막 날에 고산병에 좋은 차를 발견하는 것은 또 무슨 우연인지. 내일은 아침 일찍 기차역으로 간다. 48시간은 기차 안이다.

2007/08/25 00:25 2007/08/25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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